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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돈벌어 오겠다'며 엄마가 떠나버렸다, 기댈 곳 없는 어린 자매는···살아간다

한인 1.5세 감독 김소영은 다시 한 번 단절된 세상으로 이주한 주인공을 바라본다. 개봉: 5월 8일 개봉관: 엠팍극장 감독: 김소영 주연: 김희연(진) 김송희(빈) 고모(김미향) 등급: 없음(가족 관람 가능) 상영시간: 89분 2년전의 장편영화 데뷔작 '방황의 날들'(In Between Days)에서 김 감독은 어머니와 단 둘이 미국에 이민 온 한인 10대 소녀를 지켜봤다. 두번째 장편영화 '나무없는 산'(Treeless Mountain)에서도 마찬가지다. 배경이 한국이고 주인공이 여섯살과 네 살 난 진(김희연)과 빈(김송희) 자매라는 점이 다르지만 단절과 이주라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같은 주제지만 김 감독은 그 사이 훨씬 친절해졌다. 주제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과 이야기가 훨씬 친근하고 대중적이다. 관객들이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까닭은 친절한 감독 말고 또 있다. 그건 주인공 자매의 캐릭터(특히 진)가 뿜어내는 매력이다. 학교 끝나고 돌아와 동생 빈을 옆집에서 데려오고 엄마에게 살짝 혼나는 첫 장면부터 진의 캐릭터는 흡입력을 보여준다. 언니인 진은 강하고 동생인 빈은 약하지만 슬기롭다. 두 캐릭터의 성격이 명징하게 설정되고 이를 효과적으로 살린 아역 배우의 연기는 '나무없는 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거리다. 첫 장면에서 관객을 캐릭터에 흡입시킨 영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엄마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아빠를 찾는다며 진과 빈을 고모에게 맡긴다. 떨어지기 싫은 아이들에게 엄마는 돼지 저금통을 주며 말한다. "말 잘 들으면 고모가 동전을 하나씩 주실 거야. 저금통에 동전이 꽉 차면 엄마가 올 게." 술에 취하기 일쑤고 사정도 별로 나을 것 없는 고모가 동전을 줄리 없다. 진은 직접 돈벌이에 나서며 엄마를 기다리지만 상황은 더 악화된다. 영화는 화려한 특수효과 같은 시각적 수식어가 거의 없는 미니멀리즘이다. 화려한 볼거리도 없고 수천장의 퍼즐처럼 정교하게 맞춰지고 현란하게 비틀린 이야기도 없다. 대신 단순하게 짜여져 여백이 많은 시각적 공간과 이야기 구조에는 어떤 울림이 있다. 그건 생명의 힘이다. 아프면 울고 배고프면 먹고 장애물을 뚫고 나가는 어떤 힘. 꿈틀대는 힘. 세상과의 창인 부모도 없이 고립된 채 친척집을 전전하면서도 생명의 꿈틀거림을 잃지 않는 자매가 주는 감동이다. 꼭 주인공 자매 만의 예외적인 생명력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흔들리는 모든 목숨있는 것이 갖고 있는 원초적인 힘에 대한 믿음이다. 이런 면에서 '나무없는 산'은 낙관적이다. '방황의 날들'에서 김 감독은 현재만 얘기할 뿐 미래에 대해 별다른 전망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무없는 산'은 다르다. 카메라는 현재에 렌즈를 맞추지만 단절과 이주의 고통 너머의 미래를 가르킨다. 영화 속의 따뜻함 포근함은 이 때문일 것이다. 안유회 기자

2009-05-07

[영화 리뷰] 돌연변이들의 스펙터클 액션 퍼레이드

◇스토리 어린 시절 로건(휴 잭먼)은 눈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다. 자신이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안 그는 형 빅터(리브 슈라이버)와 함께 전쟁에 참가하고 그 곳에서 스트라이커 소령을 만난다. 감독 개빈 후드 제작 휴 잭맨 주연 휴 잭맨, 리브 슈라이버, 다니엘 헤니, 린 콜린스 장르 액션, 공상과학, 스릴러 개봉 5월 1일 상영시간 1시간 47분 등급 PG-13 스트라이커 소령은 돌연변이를 소집해 특별팀을 구성 극악무도한 살육을 자행한다. 로건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팀에서 이탈하지만 소령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프리뷰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엑스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프리퀄이다. 시리즈에 등장했던 돌연변이들의 탄생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역사를 다룬다. 인간과 돌연변이 사이에서 고민하는 울버린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의 이름에 얽힌 사연을 담았다. '블록버스터의 서막을 연다'는 개념으로 개봉하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스펙터클한 영상과 폭발적인 액션 등으로 압도적인 볼거리를 선사한다. 그 영상미는 어마어마하다. 캐나다 로키산맥부터 뉴질랜드의 광활한 평원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공할 액션은 가히 폭발적이다. 헬리콥터가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건 기본이고 박진감 넘치는 추격 장면은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든다. 무엇보다 돌연변이들의 능력을 부각시킨 다양한 액션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서사를 길게 늘어뜨리지 않는다. 빅터는 울버린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적대시하지만 그들의 대립은 파멸에 이르지 않는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는 영화 초반 스케치하듯 보여준 전쟁 장면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대목으로 설명한다. 영화는 빠른 전개와 화면 전환으로 이야기를 요약해서 보여주고 대신 스크린에 현란한 장면들을 심었다. 인간과 돌연변이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고뇌하는 영웅 울버린의 연기와 파괴력 강한 액션도 훌륭하지만 그에 맞서 섬뜩한 전율을 일으키는 빅터 역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저격수 에이전트 제로를 연기한 다니엘 헤니의 모습은 짧지만 깊은 자국을 새긴다. 울버린 쫓는 다니엘 헤니 -어떤 캐릭터= 스트라이커 대령과 함께 강력한 돌연변이들의 '웨폰 X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요원 제로. 로건을 파괴력을 지닌 울버린으로 다시 태어나게 돕지만 복수를 위해 팀을 탈퇴한 그를 세상 끝까지 추격해 심장에 총을 겨누는 끈질긴 사나이다. -초능력= 돌연변이를 쫓는 전문 추격자로서 매우 민첩하고 정확하고 파괴적인 사격 기술을 지니고 있다. -내가 맡은 배역은= "이제까지 대부분 신사적이고 로맨틱한 캐릭터를 맡았는데 이번에는 터프하고 냉정한 남성적인 성향이 강한 캐릭터입니다. 에이전트 제로도 울버린처럼 분노를 조절하는 데 좀 어려움이 있는 악역인데 비중이 그리 크진 않습니다."

2009-04-30

[영화 리뷰 - 지구] '저토록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인데···'

4500일 동안 촬영했고 북극에서 남극까지 200곳을 방문해 험난한 자연 조건과 야생의 위협 기술적인 난점을 극복하고 찍은 다큐멘터리 '지구'(Earth)에는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지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감독: 알래스테어 포더길 마크 린필드 목소리: 패트릭 스튜어트·제임스 얼 존스 개봉: 4월 22일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G 상영시간: 1시간 39분 북극곰 혹등고래 아프리카 코끼리 백상아리 순록 회색 늑대 치타 사자 상모두루미 원앙 극락조 등 지구에 거주하는 수많은 생명들의 모성본능과 야성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한 치의 틀림없이 가감 없는 지구의 현주소이지만 객관적으로 보게만 되지는 않는다. '지구'를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강한 생각이 있다. 틀림없이 제작진 또한 '지구'를 촬영하는 동안 했을 것 같은 생각이다. '저 경외롭고 존엄한 생명체들을 위해 파괴되어 가는 지구를 되살려야 한다'는 그런 유의 정의로운 생각. '지구'의 감독 알래스테어 포더길은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현재의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다른 감독 마크 린필드는 좀 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이 얼마나 특별한지 느껴줬으면 한다. 50년 후의 지구를 좋게 만들고 싶다면 지금 행동해야 한다." '지구'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결국 '자연보호'로 향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구'는 영리하다. 극장에서 선택될 수 있는 영화이길 선택했다. 영화는 절대 강압적으로 '자연보호'를 주장하지 않는다. 강권하지도 않는다. 다만 현실이 어떠한가를 펼쳐놓는 것만으로 그 필요성을 느끼도록 교묘하게 의도하고는 내버려둔다. 관객들은 그저 미치도록 귀여운 북극곰 가족이 뒤뚱뒤뚱 걷는 귀여운 모습만 보면 된다. 그들이 걷는 북극의 얼음이 온난화의 영향으로 너무 빨리 녹기 시작해 사냥터까지 가기엔 너무 늦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덤덤한 내레이션은 주장이 아니라 설명일 뿐이니 느끼기도 전에 강요당할 일은 없다. 또 다른 주인공인 아프리카 코끼리나 혹등고래 등장하는 그 모든 동물들에 대해서도 역시 관점은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자연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일지만 동물들이 펼치는 드라마 코미디 로맨스 액션 스릴러를 충분히 즐긴 후이니 영화적 포만감은 기죽지 않는다. 덕분에 '지구'는 이미 독일과 일본 한국에서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내레이션은 각국의 '국민배우'들이 맡아 자국어로 더빙했는데 일본에서는 와타나베 켄 영국과 미국 개봉판에서는 패트릭 스튜어트와 제임스 얼 존스가 선택됐다. 한국에서는 장동건이 내레이션을 했고 이명세 감독이 내레이션 디렉터를 맡았다.

2009-04-23

[영화 리뷰 - 분노의 질주] '2초 장면 위해 차 6대 부쉈다'

-영화 분노의 질주(Fast and Furious)의 배경에 한인 타운이 등장하는 것이 아주 반가웠다. 어떻게 LA로 돌아온 첫 레이스의 배경으로 한인 타운을 선택하게 되었나. "LA에서 한인 타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문화의 다양성이 집결되는 장소다. 가장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으로 도시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고 현재의 LA 색깔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 생각해 선택하게 되었다. 영화와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사실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한인 타운에 자주 간다.(웃음) 한국 음식은 정말 맛있다." -시리즈 세 번째 영화였던 '도쿄 드리프트'부터 감독을 맡았는데 다른 누군가가 시작한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물론이다. '도쿄 드리프트' 이전의 두 편은 색깔이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에 나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특히 시리즈의 네 번째가 되는 이번 영화에는 첫 편의 주인공들이 다시 등장해 첫 편 캐릭터들의 독창성을 그대로 연결해 줘야 했다. 시리즈의 시간 흐름에 따라 캐릭터가 변화하고 성숙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필요로 했다. 사실 캐스팅부터도 쉽지 않았다. 제작사에서는 원래의 주인공들이 다시 출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금 늦게 깨달았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고민하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쁘지 않게 나온 것 같고 오늘 보람을 느꼈다." -멕시코 국경을 지나는 지하 터널에서의 경주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대체 그 신에서 몇 대의 자동차를 박살낸 건가.(웃음) "적어도 100대는 되지 않을까?(웃음) 약 2초 동안의 장면을 위해 여섯 대를 부수기도 했다. 정말 말도 못하는 고생이었다. 특히 터널 신은 고생의 하이라이트였다. 실제 로케이션 촬영도 시도해 봤는데 자동차가 충돌할 때의 충격이 너무 강해서 터널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바람에 바로 그만뒀다. 그래서 결국 세트를 지어 촬영했는데 아주 작은 오차가 스태프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로 이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 차가 너무 무거워서 드리프트가 안 되는 바람에 차를 다시 만들기도 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들이 있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오프닝 장면들은 로케이션 촬영이었나. "아니다. 그 장면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웃음) 지리적으로 내리막길이 나오기 전까지 도로 거리가 맞는 곳을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 여섯 개나 되는 가스통의 움직임을 컨트롤하기 위해 자동차 위에 가스통을 만들어 입혔다. 그 위에 미셸 로드리게즈가 올라서는 장면이 있는데 그녀 정도의 액션 배우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다음 편에 대한 암시도 있다. 다섯 번째 영화도 감독할 의향이 있나. "물론이다. 하지만 캐릭터가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캐릭터가 바뀐다면 시리즈의 허울만 고집하는 것일 뿐이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의미가 없다. 차라리 다른 영화를 만들지 왜 주인공을 바꿔가며 '분노의 질주'라는 타이틀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도로에서 행해지는 불법 고속 경주에 어떤 종류이건 영향을 미칠 것 같기도 하다. "그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분노의 질주'는 긍정적인 변화를 더 많이 가져왔다. 처음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등장했을 땐 고속 질주를 즐기는 모임이 여럿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찰들은 이들을 단속할 땐 발견 즉시 경찰차로 쫓아가 바로 차를 박살냈다고 들었다. 차를 사랑하기에 시작된 문화이기 때문에 차를 어이없이 잃을 수 있고 목숨까지 담보로 걸어야 하는 레이싱은 점점 의미가 없어졌다. 합법적인 레이싱 장소에서의 레이스가 더 인기를 끌고 있다. 궁극적으로 '분노의 질주'가 자동차 레이스를 양지로 이끌어 합법적으로 자리 잡게 도운 셈이다.(웃음)" 신희승 통신원 ■분노의 질주는…흥미진진 시리즈 4번째, 오리지널 멤버 다시 뭉쳐 2001년 개봉된 '분노의 질주' 1편에 이어 시리즈 네 번째인 이 영화까지 자동차 액션에 관한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 제일 먼저 개봉된 이번 시리즈는 1편 '분노의 질주' 오리지널 멤버가 고스란히 다시 모였다. '본업'인 자동차 액션에도 충실 250여 대의 명차들을 산산이 부서뜨리며 다이내믹한 액션 신들을 만들었다. 여러모로 업그레이드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이번 에피소드는 1편 이후의 이야기다. 범법자 신분으로 FBI에 쫓기는 삶을 살던 도미닉(빈 디젤)이 연인 레티(미셸 로드리게즈)를 잃고 복수를 위해 LA로 돌아온다. 한편 LA 최대의 갱단을 쫓던 브라이언(폴 워커)은 자신의 친구이기도 했던 레티의 죽음이 갱단의 범죄와 관련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갱단 소굴에서 마주치게 된 두 사람은 복수를 위해 잠시 손을 잡는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차가 모두 일본 미국산이어서 아쉽지만 주 배경이 되는 한인 타운의 이곳 저곳을 찾아 보는 맛은 나쁘지 않다. 백종춘 기자

2009-04-16

[영화 리뷰] 꿈을 이루려는 당신께 바치는 영화 5편···좌절 딛고 희망을 꽃피우리라

당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이 세상을 가로질러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분들께 권하는 영화 5편.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루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한다. 1. 고고 70 이대로 묻어 두기엔 참 아까운 청춘영화. 청춘의 희망을 애써 과장하지 않으면서 청춘의 좌절을 굳이 미화하지도 않는 태도가 퍽 근사한 영화다.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놀이터야 안녕!" 슬프게 작별인사를 고하는 학습지 CF가 엄마들 조바심 부추기는 요즘 "니들 놀고 싶지?" 한마디 내지르고 세상과 '맞짱'뜨는 패기는 대단한 희열을 준다. 우리는 과연 1970년대보다 나은 시대를 살고 있는가? '고고70'이 던지는 질문은 지금 꽤 의미심장하다. ▶이 장면! '데블스' 멤버들이 목욕탕에서 마지막 공연을 다짐하며 의기투합하는 장면. 때로 젊음이란 질 줄 아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아 멋지다는 걸 보여 준다. 2. 스텝 업 2-더 스트리트(Step Up 2 The Streets) 우리가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엘레강스하고 빤따스틱한' 예술 교육을 일삼는 고상한 학교에 스트리트 댄스의 불손한 기운을 전파하는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전편 '스텝 업'(2006)이 음악과 춤에 힘을 분배했다면 이 영화는 오직 춤에 집중한다. 부정맥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심장박동 빨라질 일도 없는 30대 아저씨가 심장이 터질 듯 맹렬하게 춤추는 청춘을 보고 있자니 초롱초롱한 그들의 젊음이 부럽고 헤롱헤롱한 내 늙음이 서럽다. ▶이 장면! '범생이'를 비웃는 '날라리'의 저항. '엘리트'를 물먹이는 '딴따라'의 반역. 출연진 전원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마지막 댄스 배틀! 3. 그레이시 스토리(Gracie) 이건 영화이기 이전에 실화며 실화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소중한 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남자들과 나란히 같은 그라운드를 질주한 미국 뉴저지 최초의 여자 축구선수.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슈가 바로 그 불가능한 꿈을 실천에 옮긴 주인공이다. 자기 실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그녀는 주인공 엄마를 연기했다. 금남의 영역에 도전하는 여자 이야기 차별과 편견에 맞서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여자 이야기는 언제 봐도 근사하다. ▶이 장면! 결심이 흔들리는 딸에게 엄마가 말한다. "네 한계를 아는 건 좋지만 남이 정한 한계에 얽매이진 마." 멋진 엄마의 멋진 격려다. 4. 엘리자베스 타운(Elizabethtown) 자기 때문에 회사가 쪽박 찬다. 그래서 쫓겨났다. 아버지까지 세상을 뜨셨다. 나도 세상 뜨련다 목숨 끊을 생각까지 해 봤지만 산다는 건 지독한 중독과도 같아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그때 한 여자를 알게 되고 그녀가 준비해 준 지도를 따라 그녀가 골라 준 음악을 들으며 43시간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 "담쟁이 덩굴은 시멘트를 뚫고 싹을 틔운다." 시멘트처럼 견고한 좌절의 장벽을 뚫고 마침내 희망의 싹을 틔우겠다고 다짐하는 주인공 따라 덩달아 보는 사람까지 자기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를 긍정하게 만드는 영화. ▶이 장면! 엔드 크레디트와 함께 멋진 에필로그가 나온다. 잘 받아 적어 냉장고에 붙여 둬도 좋을 만큼 멋진! 5. 로키 발보아(Rocky Balboa) 다 끝난 줄 알았던 시리즈 다 끝장난 줄 알았던 배우. 세상을 향해 항변하듯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런 대사를 집어넣었다. "It's no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씀. 실제 인생에서도 막장까지 내몰려 본 주연 배우가 하는 대사라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리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야. 수없이 얻어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게 중요하지." 그래서 로키는 정말 끝까지 나아간다. 당신도 그처럼 세상 앞에 쉽게 무릎 꿇지 말길 바란다. ▶이 장면! 그 옛날 로키가 뛰어오르던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직접 뛰어오르며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는 실제 시민들 모습. 찡하고 짠하다. 엔드 크레디트와 함께 나온다.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

2009-04-09

[영화 리뷰] 식도락 시네마 4편, 맛있다···눈물 날 만큼 맛있다

여기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군침 도는 식도락 시네마 5편을 소개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이들 영화는 반드시 식전경하기 바란다. 영화가 끝난 후 이전엔 상상도 못했던 식욕이 몰려올 것이다. ▷라따뚜이 (Ratatouille) 쥐에게 요리를 맡기느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게 낫다고 믿는 사람들 닥치고 기립박수 치게 만든 영화.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는 당연할뿐더러 요리 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찬사 역시 아깝지가 않다. 절대 미각을 타고난 생쥐 한 마리가 프랑스 최고 요리비평가마저 감격의 눈물을 쏟게 만든 요리를 만들어낸다는 순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입으로는 군침을 눈으로는 눈물을 동시다발로 흘리고 앉아있는 우리는 뭐지? 2007년 아카데미상이 뽑은 최고의 애니메이션이자 당신의 요리 본능을 자극할 최고의 요리 영화! 하물며 쥐도 하는데…. ▶이 장면!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전통 요리 라따뚜이. 잘하는 집에 찾아가 직접 제 입으로 먹어볼 때 비로소 영화의 감동은 완성된다. ▷사랑의 레시피 (No Reservations) 한동안 뜸했던 주방장 연애질 영화의 심기일전. 뉴욕 맨해튼 고급 레스토랑 주방장 케이트는 피도 눈물도 없다. 오직 최고 요리사가 되겠다는 야망만 있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홀로 남겨진 조카를 집으로 데려와 놓고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는 그녀 앞에 나타난 새로운 부주방장 닉. 이 남자는 피도 눈물도 있다. 오직 최고 요리사가 되겠다는 야망만 없다. 결국 전혀 다른 요리 재료가 한 음식 안에서 어우러지듯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티격태격 맛있는 사랑을 키워 가는 이야기. ▶이 장면! 뉴욕 최고급 레스토랑 요리를 100분 내내 '눈팅'하는 즐거움. 그림의 떡도 많이 보면 배부른 법이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My Blueberry Nights)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별것처럼 그려내는 재주 하나는 단연 세계 최고인 감독. 처음으로 영어 쓰는 영화를 만든 결과 신통치 않다며 평론가들에게 욕깨나 얻어먹은 이 영화도 이른바 '왕자웨이 스타일'이 뽐내는 마성의 유혹 하나는 뿌리치기 힘들다. 외로운 연인들이 블루베리 파이 덕에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고 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 주드 로처럼 잘생긴 카페 주인이 내미는 파이라면 발로 만들어도 맛있을 텐데 심지어 손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니 여성 관객들 입에 고이는 군침은 파이 때문인가 남자 때문인가. ▶이 장면! 잠든 여자 입술에 묻은 생크림을 닦는 척 슬며시 입술 포개는 남자. 죽기 전에 꼭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은 라스트 신. ▷카모메 식당 '안경'의 감독이 만든 또 한 편의 역마살 식도락 시네마다. 낯선 곳으로 떠나 천상의 맛을 경험하고 돌아온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의 영화다. 이번엔 핀란드다. '카모메(갈매기) 식당'을 차려놓고 파리를 날리고 앉아있는 일식당 주인 사치에. 우연히 만난 일본인 여행객 미도리와 마사코가 합류하면서 카모메 식당이 파리 대신'끗발'을 날리게 된다는 참 소박한 이야기. 하지만 그들이 선보이는 요리는 결코 소박하지 않다. 계란말이 시나몬 롤 돈가스와 오니기리. 여기에 최고의 드립 커피 맛을 내는 팁까지. 가르침이 자세하고 디테일이 섬세하다. ▶이 장면! 영화에서 이렇게 탐나는 주방을 본 적 있는가. 주방 개조를 꿈꾸는 모든 주부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다.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

2009-04-02

[영화 리뷰] 인류 대재앙…아들만은 살려야 한다

니컬러스 케이지는 1000의 얼굴은 아니어도 100의 얼굴 정도는 지닌 배우다. 자살하려는 술주정뱅이(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괴팍한 역사학자(내셔널 트레져) 냉철한 FBI 요원(더 록) 등 어떤 역을 얼굴에 얹어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는 만능 연기자가 그다. 노잉 (Knowing) 주연:니콜라스 케이지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 20일 미국에서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노잉 (Knowing.사진)' 또한 여러 얼굴을 지닌 영화다. 첨단 공상과학영화이면서 종교와 맞닿아 있는 종말론적 배경을 깔고 있다. 스펙터클한 영상이 인상적인 재난영화이면서도 부자(父子)간 사랑에 초점을 맞춘 가족영화의 애틋함도 담고 있다. 케이지가 주연으로 적격이었을 게다. ▷인류가 맞을 대재앙의 예언= 케이지는 '노잉'을 "지극히 영적인 영화(spiritual movie)이며 성서의 묵시록처럼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다룬 작품"이라고 말했다. '노잉'은 대재앙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이야기는 50년 전인 1959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미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타임캡슐에 넣어 50년 후 열어보게 했다. 이 안에서 놀랍게도 숫자만이 가득 쓰여 있는 종이가 발견된다. 우연히 이 종이를 손에 넣은 MIT 천체물리학 교수 존 코슬러(니컬러스 케이지)는 숫자의 비밀에 도전해 이것이 인류의 재앙을 예고해온 예언서임을 알아낸다. 더 놀라운 건 전 인류의 생존을 가를 대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내를 잃고 홀로 외아들을 키워온 코슬러는 어떻게든 자식을 살리려 필사적으로 뛰지만 세상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노잉'은 비행기 추락과 지하철 충돌 뉴욕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대재앙 장면 등 스펙터클한 영상이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지만 예상을 뛰어 넘는 결말 때문에 관객들로부터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는 영화다. '아이 로봇' '크로우' '다크 시티' 등에서 강렬한 영상을 선보였던 호주 출신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솜씨답다. ▷영적인 세상을 향한 눈길= 케이지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적인 요소의 귀중함을 거듭 강조했다. "요즘 같은 난세에는 사람들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레 종교적이고 영적인 방향으로 사고가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물질세계 밖에 존재하는 영적인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과학의 영역을 다루는 SF영화에 대한 애착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SF영화에 출연하면 관객들로부터 놀라울 정도의 뜨거운 반응을 접하게 된다"며 "이 분야는 너무나 풍요로운 상상의 땅"이라고 표현했다. '영화의 메시지가 뭐냐'는 질문에 케이지는 관객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영화는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면 안 된다"며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 개개인마다 뭔가가 떠오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그는 또 "아버지 역을 연기하면서 실제로 두 아들을 뒀다는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노잉'은 영화 속 무대는 미국이지만 몇몇 장면을 빼고는 모두 호주에서 찍었다. 감독뿐 아니라 주연 여배우 로즈 번도 호주 출신이다. 번은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스가 사랑했던 브리세이스로 출연했던 배우다. 프로야스 감독은 "제작비가 미국보다 싼 데다 현지 스태프와 호흡도 잘 맞아 촬영지를 호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케이지는 "번이 너무나 완벽하게 미국식 영어를 해 호주 출신이라는 걸 믿지 못할 정도"라며 웃었다. 남정호 기자

2009-03-26

[영화 리뷰] 스크린에 마음 싣고···자유롭게 훨훨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카페 ■더 폴:오디어스와 환상의 문(The Fall) ■다즐링 주식회사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 ■어느 멋진 순간 보통에겐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자유가 있을지 몰라도 보통사람에겐 떠나고 싶다고 마음대로 떠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법. 여기 당신의 방랑벽을 달래 줄 트래블링 시네마 5편을 소개한다. 이 근사한 여행에 필요한 건 오직 당신의 상상력과 2시간의 집중력뿐이다.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 왕년의 '딴따라' 가 뭉쳤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카페(Cafe De Los Maestros)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쿠바 어르신들을 위협하는 아르헨티나 노익장. 얘기는 이렇다. 1940~50년대 탱고 열풍을 주도한 왕년의 '딴따라'들이 하나 둘 공항에 모여든다. 각 악기 파트별 전설의 마에스트로 23명이다. 이윽고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 궁극의 선율을 들려주는 순간 기어이 정신줄 놓고서 빠져들고야 만다. 당장 아르헨티나행 비행기 표를 끊고 싶게 만드는 탱고의 낭만이 뼛속 깊이 사무치고 진작 악기 하나 배워두지 못한 젊은 날은 땅을 치며 뉘우치고. ◇이 장면! 그분들이 탱고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탱고 역시 그분들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마지막 공연 장면. ■ 더 폴:오디어스와 환상의 문(The Fall) 장 보러 나온 어머니에게 '1+1'과 '떨이'는 도저히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감독에겐 CG란 놈이 그러하다. 천하를 얻은 듯 마음 든든한 마법의 기술 세상에 못 해낼 게 없는 이 문명의 빛나는 혜택을 극구 마다하고 오직 팔다리의 부지런함만 믿고 전 세계를 찾아 다닌 감독이 있다. 십수 년째 숱한 뮤직 비디오와 CF로 비상한 감각을 뽐낸 인도 출신 영상아티스트 타셈 싱이 그 분이다. 전 세계 18개국 26군데 명소를 돌아다니며 너무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초현실적인 온갖 비경을 카메라에 담아낸 영화. 캄보디아.몰디브. 브라질. 터키.체코.이집트…. 로케이션 장소를 일일이 셈하다 보면 겨우 열 개뿐인 손가락 숫자를 원망하고 마는 총천연색 영상 월드 투어다. 이야기 구상에만 15년 촬영하는 데만 5년. 병상에 몸져누운 단역 배우가 한 어린 아이에게 제 멋대로 지어내 들려주는'구라'를 입이 떡 벌어지는 마법 같은 판타지로 완성한 필생의 역작. ◇이 장면! 단 1초도 놓치지 마시라. 평생 다녀도 못 다닐 전 세계 비경을 눈이 아플 만큼 화려한 색감으로 포착해낸 영화를 다시 만나려면 앞으로 또 2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콩가루' 3형제의 자아 찾기 ■다즐링 주식회사(The Darjeeling Limited) 콩가루 집안 3형제가 자아 찾기 기차 여행을 떠난다. 인도 횡단 철도를 운영하는 '다즐링 주식회사' 열차에 무작정 몸을 싣고 떠난 길에 예상 밖의 사건.사고가 그들을 기다리고 그보다 더 예상밖의 결말이 관객을 기다린다. '로열 테넌바움'을 연출한 괴짜 인디 감독 웨스 앤더슨이 직접 인도 횡단 열차를 타고 다니며 써 내려간 이야기. 만일 이 헐렁하고 뜬금없는 로드무비가 코드에 맞는다면 같은 감독의 다른 여행 영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도 강권한다. ◇이 장면! 삼형제가 싣고 다니는 근사한 색감의 루이비통 여행가방. 그래! 자고로 여행 충동은 예쁜 가방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런던에서 지중해 칸까지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Mr. Bean's Holiday) 미스터 빈 아저씨가 공짜 여행 상품에 당첨됐다. 우중충한 영국 런던에서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지중해 연안 프랑스 칸까지. 남들은 참 쉽게 가는 여행 코스를 이 양반 참 어렵게도 가신다. 타라는 기차를 안 타니 보는 사람 속이 타고 잡으라는 버스를 못 잡으니 옆 사람들 뒷목 잡는 여행길. 워싱턴 포스트가 말했다. "만일 당신이 미스터 빈의 팬이 아니라면 이번이 팬이 될 좋은 기회다." 덧붙여 이렇게말하겠다. 만일 당신이 지중해에 가보지 못했다면 이번이 눈요기할 좋은 기회다. ◇이 장면!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한 미스터 빈의 즉석 거리 공연. 립싱크도 이쯤되면 예술 아닙니까. 와인농장서 인생 2막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 삼촌이 돌아가셨다. 유산을 남겼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거대한 와인 농장! 에헤라디야~ 자진방아를 돌리며 기뻐하는 조카. 이걸 팔면 얼마나 손에 쥘까 계산기 두드리느라 정신 없는 사이 뜻하지 않은 인연이 시작되고 기대하지 않은 인생 2막이 열린다. 달콤한 와인과 눈부신 햇살 아름다운 여인과 광활한 농장을 모두 손에 넣은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여기 내 인생이 얼마나 쩨쩨해 보이는지. ◇이 장면! 진짜 고흐 그림은 아까워 금고에 넣어두고 가짜 그림만 걸어두며 감상하는 주인공의 회사 보스. 진짜 꿈은 계속 가슴에만 담아 두고 통장 잔액에 저당 잡힌 우리의 서글픈 미래다.

2009-03-19

[영화 리뷰] 울다가 웃다가…세상이 달리 보인다

슬픈 영화엔 다치지 않고 세상의 아픔을 경험하는 미덕이 있다. 눈물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는 걸 아시는지. 여기, 당신의 뻑뻑한 눈동자를 촉촉하게 적셔 줄 모이스처라이징 시네마 4편을 소개한다. 둘러보면 여전히 세상은 우울한 일 투성이다.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한 일 있다면, 영화를 보며 실컷 눈물 쏟고 다 풀어 보자. 눈물은 슬픔을 누그러뜨리고 마음을 맑게 한다. 눈물 속에는 새로운 시작의 힘이 있다. 울어라, 영화도 함께 울어 줄 것이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 로큰롤 인생 평균 연세 81세(18세가 아니라!)의 할아버지.할머니 스물 네 분이 모인 미국 코러스 밴드 '영앳하트(young@heart)'. 우리말로 옮기면 '마음은 청춘'쯤 되는 밴드. 이름답게 무대에 올리는 레퍼토리가 대략 이렇다. 라디오 헤드 데이비드 보위 소닉 유스 콜드 플레이… 그 외 수많은 록 밴드 최신곡을 순전히 어르신들 마음대로 소화해 부르는 공연장마다엔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그 관객 중 한 명이 작심하고 7주를 따라다니며 완성한 다큐멘터리다. 그 7주 사이에 두 분이 돌아가셨고 촬영 끝난 후 또 한 분이 돌아가셨다.인생을 폼나게 즐기는 어르신들 덕분에 입가에 웃음이 떠날 새가 없고 세상과 아름답게 작별하는 어르신들 덕분에 눈가에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 ▶놓치지 마시라. 산소 호흡기 꽂은 채로 무대에 올라 콜드 플레이의 'Fix You'를 열창하는 프레드 할아버지. 그리고 먼저 간 동료를 추모하며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을 합창하는 어르신들. 숙연하고 또 경건하도다. ■ 어톤먼트 어린아이의 사소한 '거짓부렁' 하나가 얼마나 끈질긴 저주가 돼 세 인간의 운명을 옭아매는지를 참 아프고 슬프게 그렸다. 데뷔작 '오만과 편견'으로 주목받은 서른여섯 살 젊은 감독 조 라이트는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세상을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꾸지람을 동시에 선사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라는데 용서를 구할 대상이 이미 가고 없을 때 그것이 얼마나 아득한 절망인지먹먹해진 가슴 쥐어뜯으며 목구멍으로 꿀꺽 미안한 눈물 삼키게 만드는 라스트 신. 올해 골든 글로브 작품상을 거머 쥐게 만든 건 바로 그 마지막 장면의 기운 센 여운이었다. ▶놓치지 마시라. 전쟁의 폐허 앞에 선 주인공을 5분 넘는 롱 테이크 싱글 샷으로 담아낸 바닷가 장면. 겨우 두작품 찍은 감독이 천재란 소리를 듣게 만들었다. ■ 동경타워 베스트셀러 소설 '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가 원작. 괴짜 작가 릴리 프랭키가 쓴 자전적 소설에 울다가 웃으며 '항문발모'의 신기원을 경험한 독자들의 감동이 책에서와 같이 영화에서도 이루어졌다. 설혹 소설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는 부족함이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원작의 진심을 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는 데 100달러 건다. '도쿄타워-감동과 눈물 때때로 유머'라 불러도 좋을 균형잡힌 연출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의 '귀여움'을 토하는 마스크 엄마를 연기한 키키 키린의 대단한 연기 포스까지. 남의 영화 안에서 기어이'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보게 만든다. ▶놓치지 마시라.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걷던 아들녀석이 이제는 외려 엄마 손을 잡아 끌고 횡단보도 건너는 장면. 불효자는 웁니다! ■ 마이 파더 한국 영화에서 어머니가 대대로 그리움의 대상이라면 아버지는 대체로 노여움의 대상이었다. '마이 파더'는 그래서 더욱 기특하다. 영화에서 아버지와 '맞짱' 뜨는 대신 맞장구치는 아들 본 게 얼마만이더냐. 22년 만에 찾아낸 친아버지가 사형수라는 설정. 그 대단한 신파를 이만큼 담백하게 손질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이 징그럽도록 차분한 연출이 장편 영화 처음 찍는 데뷔 감독 솜씨라는 걸 믿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가장 뜨거운 눈물은 영화 끝나고 따라붙는 실존 인물 애런 베이츠의 동영상이 나올 때 흘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미리미리 눈물샘을 워밍업해 놓은 다니엘 헤니의 공로 역시 높이 사줄 만하다. ▶놓치지 마시라. 역시 엔드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실존 인물의 실제 상황 동영상. 실화는 언제나 영화보다 힘이 세다.

2009-03-12

[영화 리뷰] 워낭소리, 현대인이여 '잠깐 쉬었다 가소'

'워낭소리'에서는 모든 게 느리다. 여덟 살 때 침을 잘못 맞아 왼쪽 다리를 못쓰는 팔순의 최원균 할아버지는 느리다 못해 한 걸음 떼는 것도 힘겹다. 평균수명 15년을 3배 가까이 살고 있는 마흔 살 소도 걸음을 되새김질 하듯 느릿느릿 간다. 오죽하면 허리 굽은 이삼순 할머니가 답답해 우마차에서 내리겠는가. 카메라 워크도 느릿느릿 편집도 느릿느릿. 영화를 만든 회사마저 '스튜디오 느림보'다. 심지어 영화의 두 주인공은 말도 별로 하지 않는다. 마흔살 먹은 소야 말 할 턱이 없고 최 할아버지도 (거의) 말이 없다. 침묵하니 바람이나 비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의 신세타령과 고물 라디오에 나오는 쉰 목소리의 노래마저 없었다면 정말 '침묵의 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현기증 나는 속도감과 귀를 찢는 사운드의 시대에 이 느릿느릿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 1위를 질주 300만 관객 돌파를 향하고 있다. 한국 영화사에는 다큐멘터리가 (거의) 없다. '워낭소리'는 작은 기적이다. 그 기적은 느린 걸음에서 나온다. 속도의 시대.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거나 속도를 따라가느라 헉헉 대거나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거나 너무 빨리 달리느라 옛날을 잊은 사람들 '워낭소리'의 느린 걸음에서 잠시 쉬어가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단출하다. 최 할아버지와 소는 30년 지기다. 할머니는 농약 치자고 이앙기 사자고 사료 먹이자고 투덜투덜 바가지를 입에 달고 살는데 할아버지는 '안돼!' 한 마디로 끝이다. 농약 치면 농약 묻은 꼴을 먹은 소가 죽으니까. 소와 할아버지의 우정엔 딱 한 번 위기가 온다. 추석 때 모여든 자식들의 성화에 할아버지가 소를 팔러간다. 소가 운다. 할아버지는 진심이었을까? 아닌 것 같다. 죽어도 500만원을 받아야 된다며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는 걸 보면 애초에 팔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한테 "술 취해 잠들었는데 소가 집까지 데려고 갔다"고 자랑까지 한다. 이 대목에서 할아버지가 가장 길게 말한다. "저 소 없었으면 난 죽었어. 우린 같은 날 죽을 거야. 소가 먼저 죽으면 내가 상주해야지." 소는 목숨이 1년도 남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머리도 발도 아프다. "아파!" 비명처럼 내뱉는다. 둘은 느릿느릿 황혼을 향해 걸어간다. 비틀비틀 꾸부정하지만 당당하게. 이들은 곧 헤어질 것이지만 헤어지는 것은 소와 할아버지 만은 아니다. '워낭소리'는 농경문화의 황혼에서 뿌리는 한 잔의 이별주다. 이젠 산골마을의 논에도 기계가 땅을 파고 모를 심고 가을걷이한다. 농사는 남겠지만 농경문화는 사라지고 있다. 이충렬 감독은 우리를 키운 소와 아버지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라고 쓴다. 헌사가 끝난 여백에는 더 많은 말들을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키운 농경문화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세요. 이제 가면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지금이 아니면 한 줄기 눈물로 작별할 수도 없을 테니까.' '워낭소리'엔 현란한 테크닉도 액션도 스타도 없다. 하지만 사람이 있다. 목숨과 목숨의 관계가 있다. 감독은 소와 할아버지의 관계 속에 농경문화가 있다고 본다. 아침보다 더 빛나는 황혼 속으로 농경문화는 코뚜레를 풀고 워낭을 떼고 떠난다. 영화는 끝나고 홀로 남겨진 듯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온다. 한인타운 유일, 한인을 위한 문화공간 Mpark 4 ▷문의: (213)384-7080 ▷주소: 3240 Wilshire blvd., 3rd Fl. LA, CA90010 안유회 기자 [email protected]

2009-03-05

[영화 리뷰] 폭력·웃음·의리···익숙한 조폭영화

촬영 및 제작: 조인스아메리카•www.koreadaily.com 촬영일: 2009-3-18 '투사부일체' 팀이 다시 뭉쳐 만들었다는 사실. 이것만으로 '유감스러운 도시'가 어떤 영화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일종의 '투사부일체' 시즌 2라고 할 수 있다. 감독 : 김동원 각본 : 김동원 주연 : 정준호·정웅인·정운택·한고은 장르 : 액션 코미디 등급 : PG-13 상영관 : 엠팍극장 '유감스러운 도시'를 포함해 흔히 말하는 조폭영화의 재미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액션. 하나의 조폭 캐릭터다. 조폭영화 액션은 원초적인 폭력이다. 도덕적 압박이 없이 마구 휘두룰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폭력이 주는 시각적 쾌감이다. 조폭 캐릭터는 흔히 폭력+바보같은 웃음+의리가 뒤섞여 있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조폭영화의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투사부일체'의 쓰리 정인 정준호.정웅인.정운택은 이전의 캐릭터를 그대로 연기한다. 폭력도 조금 웃음도 조금 의리도 조금이다. 이런 영화에서 스토리는 독창성보다는 액션과 캐릭터를 흘리기 위한 틀 역할을 하는 보조적 위치로 떨어지기 일쑤다. '유감스러운 도시'에서도 스토리는 자주 논리적인 흐름을 벗어난다. 한 쪽에 양광섭(김상중) 회장이 이끄는 한강파이낸스그룹이라는 조폭이 있다. 그 반대편에 이들에 원한을 갖고 소탕전을 펼치는 천성기 국장(박용기)이 있다. 둘은 서로 잘 안다. 그래서 양광섭은 조폭 이중대(정웅인)를 경찰에 잠입시키고 천성기 국장은 얼굴이 안 알려진 교통경찰 장충동(정준호)를 조폭에 잠입시킨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장점도 단점도 상투성에 있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것 예측 가능한 어떤 것이다. 신선한 것을 찾는 관객이라면 식상할 것이고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관객은 재미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무수한 반복이라는 장르 영화의 힘에 기댄다. 비슷한 스토리와 캐릭터의 반복은 의외로 대중성을 갖고 있다. 관객은 비슷한 것에 물리기도 하지만 익숙한 것을 반복적으로 찾는다. 마지막 장면. 사건이 정리되고 이중대는 완벽하게 경찰로 변신한다. 다시 교통경찰로 돌아간 장충동을 찾아온 이중대. 라이터를 현란하게 돌리는 이중대를 본 장충동의 눈이 빛난다. 속편을 암시하는 대목하다. 장르영화는 계속 반복된다. 한인타운 유일, 한인을 위한 문화공간 Mpark 4 ▷문의: (213)384-7080 ▷주소: 3240 Wilshire blvd., 3rd Fl. LA, CA90010 안유회 기자

2009-02-19

[영화리뷰] 잘나가던 서른여섯 '싱글라이프' 무너지다

아이돌 스타 남현수(차태현). 두번째 앨범이 실패하는 바람에 고생도 했으나 라디오 청취율 1위 프로그램의 스타 DJ로 재기했다. ▷상영: 엠파크 4 ▷등급: PG-13 서른 여섯. 인기도 있고 삶은 럭셔리하고 여자들과 은밀한 관계도 즐겁다. 곧 깨질 남현수의 럭셔리한 삶을 보여주는 짧은 도입부는 아마도 '과속스캔들'에서 가장 지루하다. 남현수라는 캐릭터와 차태현은 혼자 있으면 재미없다. 미혼모의 사연을 보내오던 애청자 황정남(박보영)이 여섯살 난 아들 황기동(왕석현)을 데리고 나타나 "내가 딸"이라고 선언하고 남현수의 럭셔리 인생에 끼어들면서 '과속스캔들'은 웃음으로 질주한다. 남현수라는 캐릭터는 황정남과 황기동이 있을 때 빛나고 차태현은 박보영과 왕석현과 함께 할 때 빛난다. 세 사람은 짧게 치고 받는 대사부터 표정 연기까지 멋진 세트 플레이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황정남과 황기동의 캐릭터는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스크린을 장악한다. 여기에 비하면 남현수의 캐릭터는 관객 장악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 부분에서 차태현은 성숙함을 드러낸다. 신인인 박보영과 왕석현에 비하면 베터랑임에도 자신의 캐릭터에 충실한다. 튀려고 애쓰다 영화를 망치지 않는다. '과속스캔들'의 성공엔 참을 줄 아는 차태현이 있다. 차태현이 반 발짝 뒤에 서있어 황정남과 황기동이 산다. 코미디영화의 첫번째 덕목을 웃음이라 한다면 '과속스캔들'은 참 착한 영화다. 강형철 감독은 첫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솜씨를 보여준다. 그것도 신인 황정남과 아역배우를 데리고. 캐릭터를 명확하게 잡아낸다. 잽처럼 주고 받는 짧은 대사가 지루함을 느끼기 전에 드라마 요소를 넣어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 가벼운 웃음은 아버지와 딸의 무거운 감정격돌로 변하고 긴장감이 고조되면 노래로 풀어준다. '과속스캔들'엔 웃음과 감동이 군더더기 없이 리드미컬하게 흐른다. 강 감독은 관객을 움직이려면 어느 대목에 어떤 것을 넣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남현수가 14세에 황정남을 낳고 황정남이 16세에 황기동을 낳았다…. '과속스캔들'은 분명 코미디 장르 안에 있다. 웃음 속의 감동이 먹먹할 정도까진 못된다. 하지만 이만큼 완성도가 높고 캐릭터가 명료하고 웃음을 주는 코미디영화는 많지 않다. 안유회 기자

2009-01-29

[황준민의 영화리뷰] 연애, 기술이 없다면 기억을 버려라!

발표하는 작품마다 저조한 시청률로 속을 태우는 방송작가 지호(박진희)는 급기야 방송국에서 해고를 당한다. 감독 : 정정화 각본 : 정정화·유승희 주연 : 박진희· 조한선·이기우 제작 : CJ엔터테인먼트 장르 : 코미디 등급 : PG-13 그리고 바로 그날 꿀꿀한 기분에 집으로 돌아가던 중 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사고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첫사랑 민우(이기우).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지호는 기억을 잃은 척 연기를 시작하고 얼떨결에 그녀의 보호자가 된 민우는 그녀의 기억이 되돌아올 때까지만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다. '버스 정류장'의 조감독 출신인 정정화 감독의 데뷔작인 '달콤한 거짓말'은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코미디 물이다. 영화 속 지호는 술만 마시면 첫사랑 민우에 대한 얘기를 떠들어대는 겉으론 우아한 척 하지만 속은 천방지축인 평범한 여성이다. 지호가 민우와의 동거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이유 자체가 그것을 극명하게 증명해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지호의 평범함이 영화 자체를 '평범'하게 만들어 버렸다. 거기다 지호의 오랜 친구인 동식(조한선)이 등장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아예 스토리의 마지막을 가늠하게끔 만들어 버린다. 동식은 지호가 민우와의 동거를 유지하기 위해 펼치는 작전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으며 대립하게 된다. 삼각관계의 시작이다.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대립를 한다는 설정은 더 이상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주기가 힘들다. 거기다 후반부로 갈수록 지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동식과 민우의 갈등 구도가 시작되고 지호가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하면서 더욱 '뻔한' 결말로 치닫는다. 세 사람의 감정 흐름이 연결되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전개되거나 생략되는 바람에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도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심심하고 지루한 것 만은 아니다. 덜렁대는 지호가 현모양처가 이상형인 민우에게 맞추고자 온갖 '쇼'를 하는 장면들은 상쾌한 웃음을 유발한다. 이밖에도 지호의 철부지 남동생 지훈(김동욱)를 포함한 다양한주변 인물들의 연기가 감초 역할을 해냈다. 카메오들의 출연 또한 재미를 더했다. 지호와 동식을 이어주는 중국집 배달원으로 촐연한 DJDOC의 이재용민우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김선아가 깜짝 등장해 신선함을 선사했다. 현재 엠파크4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문의:(213)384-7080 황준민 기자

2009-01-22

[황준민의 영화리뷰] '히틀러를 제거하라···숨막히는 암투'

'발키리'(Valkyrie)는 북유럽 신화에서 주신 오딘을 섬기는 '싸움의 처녀들'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들은 평소에는 오딘의 발할라 궁전에서 '전사(Warror)'들을 접대하다 인간계의 전쟁에서 용감한 전사자가 생기면 오딘의 명에 따라 전장에 나가 전사자들을 아스가르드(혹은 발할라궁전)로 데리고 가는 역할을 한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당시 독일제국의 수장인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을 '오딘'으로 간주하고 악명높은 친위대인 'SS'를 발키리에 견주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신변에 사고가 생기면 유럽전역에서 활동하는 친위대를 한꺼번에 동원해 혼돈을 막을 수 있는 일명 '발키리 코드'를 비밀리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발키리 코드'를 역이용해 히틀러를 제거하려 했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독일 육군대령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톰 크루즈)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문학과 예술 다방면에 재능이 많았았던 귀족 출신이었다. 그는 귀족임에도 사회주의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가톨릭 신자로서 종교적인 믿음에 따라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했다. 북 아프리카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그는 독일 사령부로 발령을 받으면서 권력 최상위층까지 숨어있는 비밀 저항세력에 가담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게 된다. '히틀러 친위대가 히틀러를 암살했다' 즉 히틀러의 '발키리 코드'를 역이용한 작전명 '발키리'의 성사를 위해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독일군내 장교들을 설득시키기고 작전을 실천에 옮긴다. 그러나 전쟁의 여신은 끝내 이들을 향해 웃음을 짓지 않았다. '작전명 발키리'(Valkyrie)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메가폰은 '엑스맨' '수퍼맨 리턴즈'의 감독 브라이언 싱어가 잡았다. 싱어 감독은 '제3제국의 흥망'의 기록을 인용해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기 직전 15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을 2008년 스크린에 부활시켰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히틀러라고 하는 악마와도 같은 인물을 암살하는 스토리를 품은 만큼 한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사이언톨로지 교도이자 최근 몇 년 동안 각종 스캔들을 몰고 다녔던 톰 크루즈 또한 '어수선한'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완벽하게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역을 소화했다. 촬영 중 독일군 엑스트라 11명의 부상을 낳았던 트럭 사고 나치 시대를 재현한 시내 풍경에 반발하는 베를린 시민들 그리고 영화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벤들러블록에서의 촬영 불가 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영화는 이제 완성되어 관객들 곁으로 다가왔다. 현재 엠파크4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문의:(213)384-7080 황준민 기자

2009-01-08

[황준민의 영화리뷰] '화가 신윤복' 의 사랑을 엿보다

4대째 이어온 화원 가문의 막내딸인 신윤정(김민선). 감독 : 전윤수 각본 : 한수련 주연 : 김민선·김영호·김남길·추자현 제작 : ㈜이룸영화사 장르 : 사극 등급 : R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로 오빠 윤복 대신 몰래 그림을 그려주던 윤정은 아버지 신한평(박지일)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오빠 윤복이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그리고 윤정은 화원가문의 대를 이어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여성임을 감추고 남장을 한 채 오빠 윤복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당대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김영호)의 휘하에 입문한 윤복은 빼어난 실력으로 김홍도의 수제자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힘이 넘치는 남성적 화풍으로 소박한 서민의 삶을 그렸던 스승 김홍도와는 달리 윤복은 섬세하고 화려한 색감으로 여심이 담긴 풍류를 즐겨 그렸다. 그 중에서도 자유롭고 과감한 서민들의 사랑을 그려 에로티시즘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속화'는 음란하고 저급하다는 질타와 시기를 받기에 이르고 자신의 여성을 일깨워 준 정인 강무(김남길)를 만나 생애 처음 사랑의 감정에 빠진다. 그러나 윤복의 정체를 알게된 스승 김홍도마저 '어긋난 감정'을 품게 되고 김홍도를 향한 사랑으로 질투에 사로잡힌 기녀 설화(추자현)의 함정에 윤복이 빠져들면서 처절한 비극이 그들을 향해 소리없이 다가가기 시작한다. "신윤복. 자 입부 호 혜원 본관 고령 첨사 신한평의 아들. 벼슬은 첨사. 풍속화를 잘 그렸다." -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단 두 줄의 기록만 남긴 채 역사 속에 사라진 천재화가 신윤복. 2008년 신윤복 탄생 250주년을 맞아 역사 속에 숨겨진 그의 삶이 영화 '미인도'를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들어냈다. 영화 '미인도'는 제작 초기부터 수위 높은 각종 정사신과 여배우들의 노출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작품이다. 개봉 후에도 상당수의 네티즌들로부터 "조선의 천재화가가 최고의 '포르노 스타'로 컴백 했다"는 비아냥을 감수 해야 했다. 또한 많은 사극이 그렇듯이 중반부로 넘어 가면서 남녀간의 지루한 '사랑얘기'로 빠진다는 연약한 스토리의 반복이라는 혹평 또한 쏟아졌다. 하지만 신윤복이라는 실존 인물을 가상의 캐릭터(여성이라는 전제 아래)로 재창조해 그의 뛰어난 예술관과 당시의 제도와 관습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봤던 한 예술가의 '솔직한' 시각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기녀들의 목욕하는 모습을 담은 '단오풍정' 짝짓기 하는 개를 보고 웃는 과부를 그린 '이부탐춘' 달빛 아래 두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월하정인' 기녀의 몸종과 양반의 애정행각을 담은 '기방무사'등의 작품을 해석하고 당시의 상황을 스크린에 재현한 감독의 역량은 이 영화를 의미 없는 포르노로 치부하기엔 터무니 없는 근거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과감한 베드신을 통해 단순히 관객을 낚으려는 미끼로서가 아닌 갖가지 규율과 통제 속에 남몰래 정인과 사랑을 해야 했던 애절함을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표현해 내는데 성공했다. 현재 엠파크4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문의: (213)384-7080 황준민 기자

2008-12-18

[황준민의 영화리뷰] 인생을 바꾸는 유쾌한 아침 '예스'

코미디 영화의 대부 짐 캐리가 오랜만에 스크린에 컴백했다. 4년 전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에 출연해 멜로 연기를 선보이며 변신을 시도했던 그가 본업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번에 맡은 역은 대출회사 상담 직원 칼 알렌(짐 캐리). 칼은 결혼생활 6개월 만에 이혼하고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승진은 매번 탈락이다. 어쩔수 없이 출근은 하지만 인생 자체가 괴롭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부정하지만 어느덧 '루저(Loser)'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매사에 부정적이다. 그러던 어느날 칼에게 작은 기적이 찾아든다. 우연히 옛 친구가 찾아오고 그의 권유로 칼은 마지못해 '예스맨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칼은 '긍정의 힘 예스의 힘'을 믿어보기로 작정하고 이제까지와는 180도 바뀐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칼은 프로그램 규칙에 따라 모든 일에 '예스'라고 대답하기 시작한다. 홈리스가 차를 태워 달라고 해도 예스 형편없는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찾아와 대출을 요청해도 예스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도 적극적이다. 번지점프 하기 한국어 수업 듣기 모터사이클 타기 온라인으로 데이트상대 신청하기 등 무조건 '예스 또 예스'다. 그리고 마치 기적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던 그의 인생에 봄볕이 비추기 시작한다. 거기에다 꿈에도 그리던 '드림걸'인 앨리슨(주이 디샤넬)까지 만나게 되는 행운 마저 움켜쥔다. 쥐 꼬리 만한 월급 어깨를 짓누르는 업무 스트레스 시어머니 같은 직장 상사 눈물나는 승진 탈락 등 피곤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세요'라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이들의 대표주자 격인 주인공 칼 역의 짐 캐리는 '몸 개그의 달인'라는 꼬리표를 떨쳐 버리고 수준급의 연기를 선보이며 설득력을 더한다. 그렇다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익살스런 '얼굴 표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통해 캐리가 4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공부한 '한국어'실력을 엿볼 수 있다. 어눌한 발음이기는 하지만 캐리 특유의 재치와 위트가 섞여 한인 팬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게해 주리라 기대된다.

200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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